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 사회민주당 (문단 편집) === 제1야당 복귀, [[동서독 통일]]과 [[제3의 길]]을 통한 재집권 === [[파일:독일 사회민주당 로고(1989-2021).svg|width=300]] [[1989년]]부터 [[2021년]]까지 사용한 로고[* 현재 것과 크게 차이는 없어보이지만, 잘 보면 현재의 로고보다 SPD 글씨가 조금 작다. 그리고 현재의 로고에는 옆에 슬로건이 같이 표기되어 있다.]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상 최초의 내각불신임 가결로 [[헬무트 콜]]이 총리에 오르자, 총리에서 물러나 헬무트 슈미트는 불신임으로 총리 자리를 차지했지만 이것은 국민의 의사는 아니라고 주장했고, 이에 콜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이렇게 치뤄진 1983년 조기 총선에서 기민-기사 연합은 18석 이상 의석을 늘리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반면 사민당은 25석이나 의석을 잃는 참패를 당했다. 이후 [[기민련]]의 [[헬무트 콜]] 총리가 연승하면서 장기 집권을 이어 나갔고, 사민당은 다시 한번 오랜 기간 제1야당의 위치를 지켰다. 하지만 콜의 화려한 외교력에 비해 당시 기민련 정부의 내치 능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었기 때문에 기민당의 지지율은 조금씩 하향 곡선을 띄고 있었다. 그러나 사민당의 사정 역시 좋지 않았는데, 그것은 80년대 [[녹색당]]이 떠오르며 사민당의 표를 잠식했기 때문이다. [[1989년]] 즈음에는 기민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사민당을 비롯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급진적인 정국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바로 [[동서독 통일]]이었다. [[동유럽 혁명]]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동독]]의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정권이 붕괴, [[1990년]] 동독에서 최초이자 최후의 자유 선거가 실시됐다. 사민당과 기민련은 독일의 통일 방식을 두고 이 선거에서 다시 충돌했다. 정작 이 정국을 위한 물밑 작업인 [[동방정책]]을 주도한 사민당에서는 급진적 통일로 인해 발생할 사회적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점진적인 통일을 주장했는데, 사민당의 주장을 자유에 굶주린 [[동독]] 주민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결국 [[흡수통일|급진 통일]] 및 화폐 통합을 주장한 동독 기민련이 압승을 거뒀고 [[동서독 통일]]이 이루어지면서 열린 [[1990년]] [[12월]] 첫 동서독 통합 연방의회 선거에서도 [[CDU/CSU]]가 압승하면서 정권 탈환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후 콜은 통일 총리로서 초반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곧 통일의 부작용으로 독일 경제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구 [[서독]]과 [[동독]] 지역에서 모두 콜과 기민당은 빠르게 인기를 잃어갔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3의 길]]을 주창한 사민당 내 우파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당수 자리에 오른뒤 [[1998년]] 총선에서 무려 기존에 비해 의석을 46석이나 늘리며 제1당을 탈환, [[동맹 90/녹색당|녹색당]]과 독일 역사상 최초의 적녹연정을 만들며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생산적 복지 개념을 독일에 도입해 콜 총리 임기말 경제 하강 국면을 탈출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엘베 강]] 홍수 때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민당 정권에서도 독일의 경제 상황은 기민당 정권보다 나아지지 않았고 이런 실망감으로 [[2002년]] 총선에서 기민-기사 연합은 회생하여 사민당의 3표차 밑까지 따라잡았다. 어쨌거나 그래도 3석 차이로 1당을 유지했고, 녹색당과 연정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슈뢰더의 핵심 정책인 [[하르츠 개혁]]을 둘러싼 사민당 내 좌우파의 갈등이 깊어졌고, [[골디락스 경제]]가 마무리되면서 경기 침체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치뤄진 [[2005년]]에서 사민당은 기민-기사 연합에게 제1당을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이 선거에서 기민-기사 연합, 사민당 모두 이전보다 지지율을 많이 잃었기 때문에 기민당으로서도 제1당이 되었다고 기뻐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만 놓고보면 선거 결과는 사민당-녹색당의 적녹연정과 [[기민련]]-[[기사련]]-[[자유민주당(독일)|자민당]]의 흑황연정 중 그 누구도 연정으로 과반을 만들지 못하는 무승부에 가까웠다.] 기민-기사 연합은 자민당과 연정으로 과반을 구성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사민당 역시 민주사회당이나 녹색당과 연정으로 과반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기민-기사 연합의 [[앙겔라 메르켈]]은 [[메르켈 내각]]에 사민당을 포함하는 대연정을 제안했고, 사민당은 이를 받아들여 7년간의 재집권을 마무리하고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